이탈리아 남부는 사랑입니다 - 포지타노 나들이, 레몬소르베, 그리고 잊지 못할 아말피 아난타라
뭘 한 게 있다고 벌써 셋째 날이 밝았다.
조식을 먹으려고 아침부터 주섬주섬 편한 차림으로 식당에 갔는데, 음 약간 결례를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착즙 오렌지주스 한 잔씩 주시고, 커피 메뉴를 확인한다. 난 단 게 좋지만 카푸치노를, 아내는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아말피 아난타라 조식
다음에 아말피를 또 오게 된다면, 주저 없이 아난타라에 돌아올 것이다. 이유는 많지만, 조식이 너무나 훌륭했다.
일단 빵메뉴부터가 다채롭다. 분명 호텔 제노바에서 봤던 빵류도 있지만, 그 퀄리티가 훨씬 더 좋았고, 브라우니나 스콘들도 하나하나 맛있었다.
특히나 저 세 번째에 있는 햄은 피스타치오가 들어간 햄인데, 쉽게 먹을 수 없는 것이라 그런지 다들 열심히 가져가서 늦게 오면 먹을 수가 없었다.
아내는 원래 요거트를 정말 좋아하는데, 요거트도 남부지방 특산물로 만든 레몬요거트가 있었고, 블루베리요거트도 있었다. 요거트 + 과일 + 꿀(벌집 채로 갖다두심) = 극락. 요거트 별로 안좋아하는 나도 자꾸 먹게되는 맛이었다.
부페식 외에도 메뉴를 주셔서 여러가지 같이 시켜먹을 수가 있었는데, 먼저 프렌치토스트를 주문해봤다. 하.. 내가 여태 먹은 프렌치토스트가 같은 이름인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겉바속촉이었고, 기분 나쁘지 않게 달달했다. 양도 아주 적당해서 나랑 아내랑 하나씩 샘플로 먹는 느낌이었다. 바로 다음 메뉴를 살펴본다.
내가 치즈를 알면 얼마나 알겠어? 하지만 이 쉐프님은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한창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쉐프님이 테이블을 돌면서 부팔라치즈를 잘라서 한접시씩 내어주셨다.
어제 만든 싱싱한 치즈라고 하신 것 같다. 나랑 아내랑 한접시씩 먹고 미.쳤.다. 를 연발하고 있는데, 다른 테이블에 가서도 계속 서빙을 하고 계셨고, 거절한 손님한테는 아마 후회하실텐데~~ 하는 뉘앙스의 농담도 던지고 가셨다. 후회는 우리가 했다. 한 접시라도 더 먹었어야 했는데..
소고기미트볼도 따로 주문해서 먹은건데, 하.. 입맛만 너무 올라간 것 같다. 소고기 미트볼을 먹어본 적이 있었나? 너무 부드럽고 소스는 새콤했다. 나도 나름 요리프로를 많이 본 거 같은데 표현력에 한계를 느낀다. 무튼 너무 행복한 식사 그자체였다.
예전에 직장에서 일할 땐 라운지에 과일수라는 게 있었다. 과일을 위의 사진처럼 다 잘라넣고 물을 채워두고 따라먹는 형태였는데, 오랜만에 그걸 먹는 느낌이었다. 물맛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향기로운 과일향이 기분좋게 코를 찔렀다.
맛있게 먹고, 테라스로 나와 경치를 구경했다. 어제와는 다르게 구름도 별로 없고, 날씨가 매우 맑았다. 오늘은 페리가 뜨지 않을까? 마침 어제 드디어 내 유심으로 전화하는 법을 알아냈다. 오렌지유심은 프랑스번호여서, 이탈리아에 있는 번호로 전화하려면 국가번호를 같이 입력했어야 했는데, 그걸 몰라서 호텔에 연락을 못했다. 페리회사에 전화를 해보니, 친절하게 오늘은 운행도 하고 아말피에서 포지타노를 가려면 몇시 몇시 시간대가 있는지도 알려줬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즐거워지는 바다.
아말피 아난타라에는 수영장이 있다. 인피티니풀이라고 해서 춥지만 그래도 한번 가보기로 했다. 레몬산지가 맞는지 정말 보이는 곳마다 레몬이 매달려있었다.
아직 수영을 하기엔 많이 쌀쌀한 날씨였어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포지타노에 갈 채비를 하기로.
대충찍어도 이런 뷰라 정말 행복했어요.
아말피에서 포지타노로
셔틀을 놓쳤지만 프론트에 부탁을 했더니 빠르게 추가셔틀을 배정해줬다. 다행히 티켓오피스와 가까운 광장에 내려주셔서 시간에 맞춰서 티켓 구매도 성공. 아말피에서 포지타노는 인당 10유로씩이었다. 페리는 굳이 수수료내고 예약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지정석이 아닌 채로 타고 내리니까 크게 승객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아말피에서 포지타노로 간다면, 즉 우측에서 좌측으로 간다면 페리의 오른쪽, 특히 맨 위쪽 자리가 풍경을 보기엔 가장 좋다. 중간자리도 괜찮다 사실. 단점은 맨 위에 자리는 바람을 막아줄 곳이 없는 경우에 몇 분만 앉아도 매우 추울 수 있다. 의지의 한국단체관광객들이 윗자리를 다 꿰차고 있어서 아쉬웠는데, 추우셨는지 도착할 때쯤엔 다 내려와서 실내로 대피하셨다.
아말피나 포지타노나 다 같은 이탈리아 남부아니야? 라고 생각했던 내게 조금(많이) 다른 뷰를 보여주는 포지타노. 마을이 훨씬 더 입체적이고 밀집해서 지어진 것 같다. 건물도 많고, 대체로 파스텔톤이라 멀리서부터 아 이게 포지타노구나~~ 하는 예쁜 감성을 알아볼 수 있다.
갑자기 구름이 따라와서 이게 뭔가 싶었지만, 한번 마을 구경을 해보기로 한다. 마을은 대체로 작았고, 우리는 조식을 아주 배불리 먹고 와서 굳이 식사할 곳은 찾지 않았다. 특히나 4월 초였다보니 성수기는 아직 되지 않았고, 마을이 막 활기를 찾기 시작하던 때였다.
포지타노의 매력은 바로 많이 올라와서 바닷가를 볼 때 배가 된다. 아직 관절이 튼튼하다면 꼭 위로 쭉 올라가보자. 어르신들도 걸어서 잘 올라가시는데 못 갈 이유가 없다. 우중충했던 날씨도 올라갈수록 점점 맑아져서 포지타노의 진가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올라가다 보면 관광객들이 너도 나도 난간에 붙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올라갈수록 더 좋은 뷰를 확보할 수가 있다.
놀랍게도 기본카메라로 대충 찍어도 이정도로 나온다.
포지타노 경치를 내려다보면서 레몬소르베랑 티라미수
https://maps.app.goo.gl/Bimxugw5mQ4vfyMfA
Angelo Pasticceria Artigianale 1970 · Viale Pasitea, 159, 84017 Positano SA, 이탈리아
★★★★★ · 패스트리 판매점
www.google.com
올라가다가 좀 쉬고싶을 때쯤엔 이런 가게가 나온다. 안에 먹을 공간은 너무 협소하고, 앞에 난간에 테이블 형식으로 공간을 마련해뒀는데, 아름다운 해변을 보면서 먹는 소르베 맛이 일품이다. 사실 별로 기대 안했는데, 산지의 레몬 맛은 평타를 쳐도 너무 맛있다.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 소르베. 티라미수도 물론 맛있었다.
주변에 화장실을 쓸만한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딱 이 포인트에서 소르베 하나 시키고 화장실 쓰고 오기에 좋다. 사람이 몰리면 자리 경쟁이 좀 치열하고, 샌드위치 등의 간단한 먹거리도 팔기 때문에 아주 좋은 가성비 디저트가게라고 할 수 있다.
포지타노는 이것저것 구경할 게 많은 편이다. 아말피는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심심한 마을인데 비해 포지타노는 사람들이 살레르노나 소렌토에서부터 페리를 타고 구경오는 곳이라 컨텐츠도 많고, 기념품샵도 많다.
어딘가 릴스에서 본 것 같은 올리브영에 없는 레몬사탕이라는 거 파는 기념품가게에선 자석도 많이 팔고있다. 쓸 데 없는 거 모으는 취미는 잘 없어서 패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포지타노를 떠난다. 10시 30분 배를 타고 11시에 도착해서 3시 페리를 타고 돌아왔으니 그래도 한 네 시간 정도 있었다. 이번엔 또다른 단체관광객들도 갈 때 같은 배를 타게 돼서.. 아말피에 함께 도착하게 됐다. 그들의 동선과 겹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빠르게 숨겨진 스팟으로 이동했다.
Belvedere Cimitero Monumentale
https://maps.app.goo.gl/UPbzi8pZ3Mhttf2MA
Belvedere Cimitero Monumentale · Salita S. Lorenzo del Piano, 84011 Amalfi SA, 이탈리아
★★★★★ · 공원묘지
www.google.com
여기는 어느 유튜브에서도 숨겨진 스팟으로 나왔고, 내가 사서 읽던 이탈리아 여행책에서도 소개해 준 곳이다. 아말피 두오모성당에서 가까운 곳에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수 있게 되어있는데, 아마 인 당 3유로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판기에서 엘레베이터 이용입장권을 사서 타고 올라가면 엄청난 뷰가 펼쳐진다.
마을 전체를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인 셈인데, 사실 이 곳도 마을이다. 공원묘지가 맨 위에 있고, 아래로 쭉 마을이 이어져 있어서 마치 서울 그랜드하얏트 밑의 골목골목같은 느낌도 있다.
네 장관입니다. 남부여행은 그냥 내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풍경을 감상하는데 질리지가 않는 그런 기분.
쭉 걸어가다가 그냥 지나쳐가려던 찰나에 어떤 주민이 손짓으로 여기로 가라고 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는데 자꾸 가보라기에 가봤더니 이런 엄청난 건축물이 나왔다. 여긴 사실 꽤 규모가 커서 해안가에서도 보이는 건물이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규모가 한층 더 웅장했다.
들어가보고 나서야 여기가 묘지인 것을 알아챘다. 아마도 이 마을의 많은 사람들은 이 곳에 묻히는 것 같았다. 어느 묘지들은 규모가 꽤 컸고, 가계도가 붙어있는 곳들도 있었고 참 다양했다.
숙연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길을 따라 내려가기로 한다.
내려오고 있자니 갑자기 비가 온다. 해안가는 정말 알 수가 없다. 비를 맞으며 어떻게든 숙소로 복귀.
한량이 된 기분이다. 비를 말리고 느긋하게 경치를 감상한다.
이게 마을 초입에서 산 (아마 안드레아 판사 젤라또집 옆골목 어딘가) 샌드위치였다. 8유로 주고 별 기대없이 산 샌드위치였는데, 너무 신선하고 맛있는 샌드위치였다. 돌아보니 이탈리아의 모든 샌드위치는 공항 빼고 퀄리티가 수준급이다. 재료 자체의 맛이 뛰어나서 그런 것 같기도.
다시 아난타라 수영장
다섯시가 넘은 시점이라 수영장 물이 좀 데워졌다. 나는 수영은 하지 않아도 볕이나 쬐려고 아내와 같이 수영장으로 향했다. 4월초의 물은 확실히 차가웠는데, 물속성인 아내는 그래도 마냥 좋은 모양이다. 아주 즐겁게 헤엄을 쳤다.
5월 중순 이후부터는 본격 성수기가 시작된다고 한다. 날이 더워지면 당연히 해안가의 인기는 엄청나겠지. 그 전에 와서 다행이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아마 그쯤 왔으면 이 수영장에 누울 자리가 없지 않았을까.
누워 있으면 물도 한병씩 갖다주신다. 참 친절한 직원분들.
저녁 먹은 것도 쓰려고 했는데 글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서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