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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Feat. 손디아 - 어른)잡다한 이야기 2022. 12. 4. 16:09반응형
작년에는 드라마를 많이 봤다. 올해 책을 많이 읽었듯, 작년의 나를 채운 컨텐츠는 넷플릭스에 있던 여러 드라마들이었다.
좋은 드라마, 재밌는 드라마는 많지만 여운이 남는 드라마는 많지 않다.
나의 아저씨는 여운을 주는 드라마였다.
꽤 이상한 드라마였다. 어떤 면에서는 약간 미생 같았다. 속 시원한 전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보는 내내 고구마 먹는 기분인데도 시청자에게 위로를 건네는 그런 이상한 드라마.
시청자들 대부분이 이지안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 녹아있는 억척스러운 현실은 결코 외면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 주인공 박동훈은 이지안의 어두움에 연민을 느끼지만, 함부로 손을 건네지 않는다. 어설픈 공감은 되려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을 말해 주잖아.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
그게 보여, 그래서 불쌍해.
대사들 군데군데 가슴 저리게 와닿는 내용들이 있다.
유년시절이 밝지 못했던 사람들은 이 드라마가 마치 내 얘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사채업자에게 시달려봤냐고? 아픈 할머니를 모시고 혼자 살아봤냐고?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도 상처받은 아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억척스레 두 자식을 키워온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나는 빨리 커서 엄마의 부담을 덜고 싶었던 아이였다. 친구들은 등 떠밀려서 다니던 학원을 나는 공부가 하고 싶어도 쉬이 보내달라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재수를 결심하기에 앞서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지 전전긍긍했고, 등록비가 저렴한 국립대학교만 선택지에 두고, 교환학생의 기회는 과외비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해버렸다. 모든 선택지를 경제적 손실로 분류하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누구에게는 당연할 수 있는 것들은 누군가에겐 사치가 된다. 부족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더 빨리 커버리고, 현실을 알게 된다. 그게 정서적이든, 경제적이든, 가족이든, 결핍이란 그렇다.
박동훈 같은 존재는 한 줄기 빛과 같다. 먹구름이 잔뜩 낀 것 같은 내 인생에서, 비만 안 와도 다행이라고 수긍하고 있을 때 드리우는 빛.
나는 인턴 생활을 하면서 나를 고용해 준 사장님이 바로 그런 존재였다. 내 삶을 이해하고자 하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멘토가 되어주려 했다. 물론 잊지 못할 나의 미국 생활의 기회를 준 사람이기도 하다.
나도 좀 더 성장한다면 저런 사람이 될 수도 있을까.
우리는 모두 다 시행착오를 한다. 박동훈 역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지만, 사실은 본인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망가져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간다.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해나간다는 점이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휴머니즘 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이 드라마는 OST까지 너무 좋다.
손디아의 어른은 이번에 스포티파이가 정리해 준 내가 올해 가장 많이 들은 곡 중 무려 3위에 올려놓았다.
극 중의 분위기랑 잘 맞기도 하지만,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깊은 울림을 준다.
고단한 하루 끝에 떨구는 눈물
난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아플 만큼 아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 건가 봐
이 넓은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아무도 내 맘을 보려하지 않고
아무도
눈을 감아보면 내게 보이는 내 모습
지치지 말고 잠시 멈추라고
갤 것 같지 않던 짙은 나의 어둠은
나를 버리면 모두 갤 거라고
웃는 사람들 틈에 이방인처럼
혼자만 모든 걸 잃은 표정
정신없이 한참을 뛰었던 걸까
이제는 너무 멀어진 꿈들
이 오랜 슬픔이 그치기는 할까
언젠가 한 번쯤 따스한 햇살이 내릴까
나는 내가 되고 별은 영원히 빛나고
잠들지 않는 꿈을 꾸고 있어
바보 같은 나는 내가 될 수 없단 걸
눈을 뜨고야 그걸 알게 됐죠
나는 내가 되고 별은 영원히 빛나고
잠들지 않는 꿈을 꾸고 있어
바보 같은 나는 내가 될 수 없단 걸
눈을 뜨고야 그걸 알게 됐죠
어떤 날 어떤 시간 어떤 곳에서
나의 작은 세상은 웃어줄까
나의 아저씨는 어른들을 위한 드라마인 것 같다.
미생을 처음 시청한 게 대학생일 때였는데, 직장인이 되고 보는 미생은 또 다른 작품이었다. 나의 아저씨 역시 어른일 때 볼 수 있는 장면들이 더 많은, 그런 작품이다.반응형'잡다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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